미래문명원
미원(美源) 서거 10주기 기념 심포지엄, 미원의 철학을 통해 본 평화의 의미
문명 전환의 시대, 평화의 가치와 인간의 역할에 대한 새로운 조명
경희학원이 제41회 유엔 세계평화의 날 기념 Peace BAR Festival·미원 서거 10주기 기념식을 개최했다. 유엔이 선포한 세계평화의 날인 9월 21일(수) 평화의 전당에서 개최된 이 행사는 세계평화의 날의 의미와 경희학원 설립자 미원(美源) 조영식 박사의 철학이 지금 시대에 갖는 함의에 관한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구성됐다. 오전에는 기념식과 세계평화의 날·미원 서거 10주기 기념 대담이 진행됐고, 오후에는 미원 서거 10주기 기념 심포지엄과 세계평화의 날 기념 라운드테이블이 이어졌다.
기념식 및 대담, 설립자 철학 재조명해 전 지구적 문제의 해결책 탐구
이날의 행사는 경희학원 설립자 미원(美源) 조영식 박사의 철학을 재조명하고, 그 철학이 지금의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를 찾아 현재화하는 작업이었다. 기념식은 세계평화의 날과 해 제정을 위한 설립자의 노력과 그의 철학을 톺아보는 시간이었다. 기념식의 핵심은 미원 서거 10주기 기념 영상 에세이 《전환의 시대, 평화의 책무》였다. 영상은 설립자가 전 생애에 걸쳐 천착한 인간과 인간, 인간과 세계, 인간과 지구의 평화에 관한 사상과 철학을 되새기는 내용을 담았다. 영상 상영 다음에는 설립자 연설문 선집 『눈을 들어 하늘을 보라 땅을 보라』의 봉정식과 기념 음악 연주가 이어졌다. 기념 음악은 설립자가 작사한 가곡《목련화》를 새롭게 편곡해 연주했다. 이 노래는 설립자가 학생들에게 꿈을 심어주기 위해 지은 작품으로, 1974년 경희대 축전 때 공연한 ‘칸타타 경희 4반세기 송가’에 삽입됐다.
이어진 기념 대담은 조인원 경희학원 이사장을 대담자로 초청해 권기붕 경희대학교 평화복지대학원 원장의 사회로 진행됐다. 대담에서는 설립자 철학의 핵심을 짚고, 그 사상이 지금의 경희와 인류사회에 전하는 가르침에 관해 논의했다. 설립자는 평화와 인류 번영을 생애 화두로 삼았다. 전승화(全乘和) 철학을 구축해 보편 규범을 탐색하고, 우주와 인간, 인간과 문명을 포괄하는 사상을 정립했다. 그는 전일적(全一的) 세계관으로 인간과 지구 생명이 함께 살아가는 지구공동사회를 꿈꿨다. 설립자의 철학은 기후위기, 핵, 전쟁의 위협, 불평등, 기아와 난민 등 인류가 마주한 복합적 문제와 절멸의 위기 앞에서 문명 전환의 필요성과 실마리를 제시한다.
오후에는 설립자의 철학을 보다 깊이 탐구하는 미원 서거 10주기 기념 심포지엄이 열렸다. 신진숙 경희대 국제지역연구원 교수가 주제 발제를 하고, 송재룡 경희학원 전문위원이 사회 겸 토론을 맡았다. 신 교수는 ‘평화는 개선(凱旋)보다 귀하다 - 미원의 철학을 통해 본 평화의 의미’를 주제로 설립자의 철학을 오늘의 관점에서 새롭게 조명하고 미래세대에 던지는 메시지를 소개했다. 심포지엄의 제목인 ‘평화는 개선보다 귀하다’는 설립자가 1981년 제6차 세계대학총장회 총회에서 행한 기조연설의 제목이다. 이 연설을 통해 세계평화의 날과 해의 제정을 제안했다. 설립자가 세계평화운동사에서 어떤 역사적 실천을 하고 사상을 제시했는지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문장이다.
본격적인 발제에 앞서 설립자와 오랫동안 교육·학술적 유대 관계를 맺어온 어빈 라슬로 부다페스트클럽(The Club of Budapest) 설립자이자 회장이 보내온 설립자 서거 10주기 추모 메시지가 공개됐다. 라슬로 회장은 “(고인은) 깊은 통찰력과 예리한 현실 인식을 겸비했다. 교육자로서 이룬 성취는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 청년들의 교육에 지대하게 공헌했음을 입증한다”며 설립자와의 오랜 인연을 술회했다. 설립자와 라슬로 회장은 세계평화의 이념과 실천 비전을 공유했고, 그 유대는 경희학원과 라슬로 연구소, 부다페스트클럽의 상호 협력으로 이어졌다.
지난 세기, 인류사회의 재건을 추구한 미원의 철학에서 찾은 문명 위기 해법의 실마리
설립자의 철학이 배태된 냉전 시대는 세계 핵전쟁에 대한 공포와 두려움이 실재했던 ‘전쟁 대기(大氣)’ 사회였다. 이러한 냉전 사회가 무너지고 전체 인류사회 분위기가 ‘평화 대기’로 변화하기까지는 수많은 사람의 노력과 실천이 존재했다. 설립자 역시 이러한 평화 대기 조성을 위해, 민족과 국가의 경계를 넘어 드넓은 평화사상을 펼치고 그 실천운동을 전개했다.
비록 냉전이 종식됐다고는 하지만, 현재 인류사회는 과거보다 더 큰 문명사적 절멸의 위기를 맞고 있다. 기후위기와 지구사회의 불안, 풍요가 만들어낸 그 이면의 환경적 재앙, 인간과 함께 살아오던 지구 생태계의 변형과 수많은 종의 멸종에 이르기까지, 이제까지의 지식과 제도로는 풀 수 없는 더 큰 문명의 위기로 치닫고 있다. 이번 심포지엄은, 냉전시대의 평화운동가이자 사상가였던 설립자의 철학을 통해 현재 인류사회가 마주한 다양한 문명사적 난제들을 풀어갈 수 있는 실마리를 찾아보는 데 의미를 둔 토론의 장이었다.
설립자의 평화사상은 문명의 자기모순적 현실에 대한 의문에서 출발했다. 신진숙 교수는 이러한 설립자의 물음을 ‘왜 문명이 발달해도 우리는 전쟁 속에 살아가는가?’ ‘왜 문명이 발달해도 인간은 소외되는가?’ ‘왜 문명이 발달해도 인류사회엔 일관된 철학이 없는가?’로 설명했다. 신 교수는 설립자가 문명의 자기모순과 불안에 관한 질문에 천착해 우주와 인간의 관계를 재사유하는 과정에서 ‘주리생성(主理生成)’ ‘주의생성(主意生成)’ ‘전승화(全乘和)’ 철학이라는 핵심 사유를 구성했음을 강조했다.
주리생성은 존재(實)와 현상(相)과 이치(理)의 삼이일(三而一) 관계론을 의미한다. 신 교수는 설립자 철학의 요체를 “세상의 모든 존재는 관계를 맺고 살아가고, 그 관계 속에 강도와 밀도는 있지만 이 관계는 수평적 연결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찾았다. 모든 것이 서로 관계를 맺어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공존하는 우주적 네트워크의 관점에서 인간사회를 바라보면, 인간 역시 홀로 존재할 수도, 살아갈 수도 없음을 깨닫게 된다. 이는 문명사적 위기를 만들어낸 인간의 오만을 성찰하고 인간과 더불어 지구 생명체가 함께 살아가는 지구를 상상하도록 만드는 데 그 함의가 있다.
전승화 관점으로 모든 실체가 전일적으로 연결돼
특히 신 교수는 설립자가 논했던 주의생성의 관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설립자는 우주의 모든 존재와 현상 변화가 자연의 이치에 따라 작용하고 기능하는 주리생성의 관점을 견지했다. 하지만 이와 동시에 유기실체, 무기실체 등 수많은 실체의 ‘의식(意)’이 우주 만물의 존재와 현상 변화를 끌어내는 것으로 봤다. 이치뿐 아니라 의식의 개입과 작용에서 변화와 생성의 원리를 찾았기에 설립자는 ‘주의생성’이라고 명명했다. 주의생성의 관점에서는 인간만이 의식 존재가 아니며, 식물이나 동물, 우주 모든 실체가 각각의 의식과 의지를 갖고 살아간다는 관점이 성립된다.
주리·주의 생성론이 작동하고 기능하는 실제의 과정을 전일적인 변화 생성의 원리 속에서 살펴본 것이 곧 전승화 철학이라고 할 수 있다. 신 교수는 전승화를 설립자가 설명하고자 했던 전일적 우주 운동의 근본요인으로 꼽았다. 우주의 모든 것, 모든 일이 무한한 인과관계의 흐름에 따라 형성되고 흩어진다. 이 모든 것이 모든 것과 얽혀 존재하는 모습이 곧 상관상제(相關相制)라고 할 수 있는데, 전승화 철학은 바로 그 전일적인 관계의 모습과 작동을 설명한다.
전승화의 구체적 작용 원리는 시간, 공간, 환류, 실체라는 네 가지 주요한 근본요인인 기체(基體)로 풀이된다. 신 교수에 따르면 설립자는 이 기체들이 서로 관계를 맺고 그 안에서 상호작용하는 전체의 과정을 승화(乘和) 개념으로 집약해 설명했다. 식물사회, 동물사회, 인간사회를 비롯한 우주 사회가 인간의 인식능력으로는 모두 파악할 수 없는 거대한 승화의 과정을 통해 구성된다고 본 것이다. 신 교수가 설립자의 전승화 철학이 전일적인 변화와 생성의 네트워크를 설명하기에 적합한 개념이라고 강조한 이유이다. 신 교수는 이러한 설립자의 전일적 사유에 관하여 “전승화의 관점은 생명 시스템과 인간의 사회 시스템을 함께 보고자 한다. 우리의 실존과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세계, 극미한 시스템부터 기후와 같은 거대한 실체에 이르기까지 모두 전일적으로 연결돼 존재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전일적 사유에서 바라본 미원의 평화사상과 현재적 의미의 탐색 과정
심포지엄은 전승화 철학을 통해 본 평화의 의미에 관한 논의로 이어졌다. 미원의 전승화 철학으로 우주 만물을 해석하면, 모든 존재하는 것이 하나의 전일적인 유관한 관계 안에 존재하기 때문에 서로가 서로에게 수평적이고 평등하다. 이런 논리는 필연적으로 또 다른 질문으로 이어진다. 전일적이고 거대한 전승화의 인과, 그 인과의 네트워크 안에서 인간의 역할이 과연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이 그것이다.
신 교수는 설립자가 구성한 평화의 개념을 그가 정립하려 했던 전승화 철학을 기반으로 새롭게 소개하고 발전시킬 것을 제안했다. 신 교수는 가장 먼저 냉전시대에 평화의 대기를 추구하며 구성했던 설립자의 평화 개념에서 ‘차이와 조화’라는 본질적 방향성을 논했다. 전승화의 관점으로 보면 가장 아름다운 질서라 할 수 있는 평화는 차이들의 조화에서 출발한다. 평화는 ‘같음’으로 환원될 수 없고, 그 어떤 이질적 차이를 제거한 ‘평정(平定)’의 상태도 될 수 없다. 설립자는 이런 차이를 제거하지 않고 평화를 실현할 실용주의적 해법으로 ‘평화 규범’을 제시한다. 이것은 인류가 공동의 가치와 규범, 목표를 설정하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 노력해 가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설립자는 누군가를 굴복시켜 얻는 평정은 진정한 평화가 아니라 역설했다.
설립자의 역사관은 변신적 변화의 역사관, ‘메타모포시스(Metamorphosis)’ 역사 철학이었다. 그는 평화의 개념이 단순하게 고정된 이상의 실현이 아니라 끊임없이 변화하는 역사적 계기 속에서 인류사회의 의식혁명을 만들어내는 주요 개념이라 설명했다. 신 교수는 나아가 물질과 정신을 분리하지 않는 전승화 철학 속에서 구성되는 ‘지구공동사회(Global Common Society)’에 대한 설립자의 문명사회 이론을 소개하고, 이를 바탕으로 평화가 인류의 당위적 요청일 수밖에 없는 이유를 논했다. 신 교수는 전승화의 관점에서 지구공동사회의 본질적 시각은 인간과 문화뿐 아니라 자연 그 자체, 인간이 아닌 모든 존재가 얽혀 살아가는 사회를 지향하는 것이라는 점을 재차 강조했다.
전승화의 관점에서 바라보면, 인간이 살아가는 세계는 지구 행성이라는 무한한 생명 시스템과 연결된 시스템이다. 따라서 지구공동사회의 일원은 인간만이 아니라 볼 수 있다. 신 교수는 “설립자가 상상했던 평화의 길이 ‘마땅히 존재해야만 하는(ought to be, ought to do)’ ‘오토피아(Oughtopia)’의 세상이었으며, 그것은 유토피아(Utopia)나 디스토피아(Dystopia)가 아닌 제3의 길에 대한 설립자의 상상이자 소망의 표현이었다”라며 발제를 마쳤다.
설립자의 철학과 평화 사상이 전 지구적 위기 상황의 실마리
발제에 이어 송재룡 전문위원과의 토론을 진행했다. 송 전문위원은 “미원의 전일적 사유체계와 전승화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높이고, 평화 사상을 이념적·실천적으로 이해하는 시간이었다”라고 말했다. 이어 “미원의 평화 사상 중에는 응당 다름과 차이를 전제하는 부분이 있다. 통상 다름과 차이를 극복하는 방법은 인정의 정치나 인정 투쟁과 같은 정치사회학적 개념을 생각하기 쉬운데, 그의 철학은 이런 개념을 넘어서는 것으로 보인다”라며 “그의 사상에는 조화 속에 대립이 존재하고, 그 속에 조화가 있다. 이것이 어떻게 가능한지”라고 물었다. 또한 전일적 사유로 우주와 인간, 지구사회를 바라본 설립자의 철학이 위기를 겪는 오늘날의 우리에게 던지는 문명사적 함의, 그 속에서 도출되는 인간에게 부과한 진정한 문명사적 역할과 가치가 무엇인지에 대해 화두를 던졌다.
이에 신 교수는 “모든 생명 개체는 생명 유지를 위해 노력한다. 생명이 유지되고 살아간다는 것은 변화가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라며 “한 개체 수준에서도 스스로 멸종할 수 있는 절대절명의 과제가 주어질 수 있다. 우리 인류도 충격을 받으면 좌절하고 끝나지 않고, 그것을 통해 새로운 변화를 전면적으로 끌어낼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덧붙여 “나아가 인간은 문명을 창조한 존재이자 동시에 문명의 파국을 초래하는 존재라는 점에서, 인간의 역할과 가치는 폐기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더 큰 역할과 책무가 주어졌다는 것이 전승화 철학의 설명이다”라고 말했다.
심포지엄은 설립자의 철학과 평화 사상 속에서 현 인류가 마주하고 있는 전 지구적 위기 상황을 풀어가는 하나의 실마리를 찾는 자리였다. 이런 논의는 인간이 스스로 전체 우주에 속한 존재로서 다른 존재를 동등하게 받아들이고 그들의 시각도 이해할 수 있는 사유의 전환이 필요한 시점임을 생각하게 한다.
글 정민재 ddubi17@khu.ac.kr
사진 이춘한 choons@khu.ac.kr
ⓒ 경희대학교 커뮤니케이션센터 communication@kh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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